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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수) 빛 vs 어둠

 

‘빛과 어둠의 싸움’이라는 말 종종 쓴다.

이 말을 쓸 때 떠오르는 것은,

착한 놈 혹은 우리 편(빛) 하고 나쁜 놈(어둠)이 맞서 싸우는 것이 생각난다.

권투경기처럼 서로 치고 받고 하다가 마침내 어느 한 쪽이 승리하는 느낌이 그것이다.

 

그런데, 비유나 은유로 빛과 어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로 빛과 어둠은 싸우는 것일까?

실재로 빛은 존재하는가? 그렇다.

그러면, 실재로 어둠은 존재하는가?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어둠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빛이 부족하거나 빛이 차단된 상태를 우리는 그저 ‘어둡다, 어둑하다, 깜깜하다’고 표현할 뿐이다.

 

부활시기(특히 요즘)의 독서와 복음에 나타난 빛과 어둠의 상징은 그 대상(나타내는바)이 뚜렷하게 표현된다.

빛은 뭘까? “믿는 것(신앙)”이다.

약간의 설명을 보태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는 그리스도이시고, 죽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빛’이다.

어둠은? “믿지 않는 것(불신)”이다.

설명을 보태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고, 부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서, 신앙과 불신앙이 권투선수처럼 뚜렷하게 실재하고 서로 싸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메시지이다.

어둠이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불신역시도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두려워말라는 것이다.

다만 실재하는 것은 신앙(믿음)뿐이며 이 믿음이 부족하거나 차단되어 있어서 불신이 짙어 보이거나 만연해 보일뿐이라는 메시지이다.

 

존재하는 것은 ‘신앙’뿐임을, 그리고 ‘불신’은 강력해 보이지만 실상은 허상임을 성서는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저희가 보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신앙(예수의 부활)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사도들이 천사에 의해서 풀려난 사건이 오늘 독서의 내용이다.

가두고, 차단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감옥문의 위력은 대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감옥문은 실재가 아니라 허상이라는 것이다.

신앙은 불신의 허상, 불신의 벽을 넘고 통과하여 빛으로 나아간다.

 

제자들의 이 사건은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예수의 사건’과 매우 비슷하다.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요한20,1).”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마르16,4-6).”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무덤으로 다가가 돌을 옆으로 굴리고서는 그 위에 앉는 것이었다. 무덤을 경비하던 자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쳤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28,2-6).”

“무덤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루카24,2-5).”

네 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 ‘무덤의 돌’은 사도행전의 ‘감옥 문’과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무덤(죽음)도 어둡고 감옥도 어둡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무덤의 돌을 넘었고, 그분의 부활은 믿는 제자들은 감옥 문을 넘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요한1,5).”

성서가 전하는 빛은 ‘부활의 믿음’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빛과 어둠의 비유처럼 실재하는 불신과 대결하는 구도가 아니다.

불신은 ‘무덤의 돌, 감옥 문’과 같이 강력해 보이지만 실상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며, 믿음이 비쳐올 때 사라지는 것(실재 없었음이 드러나는, 공허한 것)이다.

 

오늘 독서에서 조금 더 읽어보면, 믿지 않았던 사울이 눈멀게 되었다가 다시 보게 되면서 믿게 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같은 맥락으로 생각된다.

눈뜬장님으로서의 삶(사울, 믿지 않음)에서 바오로 사도(부활의 증인)로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그 또한 믿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 후 어떤 일이 발생했나?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사도16,26).”

실재하지 않는 불신의 허상을 넘어 빛이 어둠을 해체시켜 버린 것이다.

깜짝 놀란 간수가 엎드린다. 묻는다.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우리에게 바오로는 단순히 이렇게 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사도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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