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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 5

돌을 던지는 순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끌고 와서 그 죄를 묻는 군중들입니다. 그들의 분노와 음흉한 흉계를 뚫어보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기막힌 말씀입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는 라는 표현에서 ‘먼저’는 돌을 던지는 순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돌을 손에 쥐고 죽일 듯이 덤비던 군중들은 예수님의 이 한 말씀에 심리적인 혼란과 변화를 겪습니다. 그러면 우리 중에 누가 죄 없는 사람일까 하고 자기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피게 됩니다. 나 자신이 죄 없는 사람의 명단에 속해 있을 만큼 깨끗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서를 살피는 행위가 이미 성찰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결국 누구도 돌을 먼저 던질 만큼 깨끗한 의인이 아니라 스스로 죄인임을 자각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짧은 한마디가 살기등등한 그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게 하며 행동에서 변화를 일어나게 한 것입니다.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요한 8,9) 손에 돌을 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먼저 떠나갔다는 것은 그래도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산 이들이 나이 값을 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인생의 온갖 것을 다 겪었다는 말입니다. 곧 남의 잘못을 고발하기만 하면 그만큼 자신도 불행해 진다는 것을 잘 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나이 값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허물은 인정하지 않고, 남의 잘못을 소리 높여 비난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고 떠나는 사람입니다.

 

   ‘떠나갔다.’ 그 자리에 남아서 죄인의 허물을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악착같이 이웃의 죄를 고발하려는 무서운 심성이 우리 시대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그래 당신이 얼마나 잘 먹고 잘사나 보자’는 식의 무서운 심성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스스로 죄인의 자리에서도 벗어날 줄 모릅니다.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님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당연히 떠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온갖 분노와 복수라는 무서운 감정을 떨치지 못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잿더미처럼 무너지고 말게 될 것입니다. 부끄러운 자리를 부끄럽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람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행이고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부끄러움, 일종의 죄의식을 느낀다는 것은 회심(回心)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나이든 사람들부터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나간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난 그들의 내적인 변화를 우리도 따라가는 사순절을 살아갑시다.

 

 

도원천주교회(2020년 4월 1일)

최경환(F.하비에르)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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