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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성주간 수요일)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마태26,22-23)

 

제자들은 왜 몹시 근심했고, 왜 ‘저는 아니지요?’ 라고 예수께 물어본 것일까?

 

사실 주님을 배반할지 말지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 물어보았다는 것은 ‘내가 어떤 결정, 어떤 선택을 할지 스스로도 모른다’는 의미가 아닐까?

 

열둘 중의 하나가 배신할 것이다.

마음을 굳힌 하나(가리웃 유다)를 제외한 열하나의 제자들은 자기 자신이 배신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확신 없는 스스로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해서 예수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물어본 것은 아닐까?

 

일본의 박해시대(17세기) 때 ‘후미에(그림을 밟는다는 뜻)’라는 천주교신자 감별법이 있었다.

관청에서 정기적으로 마을 사람들을 집합시켜서 줄을 세우고,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성화그림을 밟고 지나게 하고, 밟지 못하면 모진고문을 가하고 처형하였다.

이 성화그림 또는 그런 방법을 후미에라 한다.

 

후미에가 있기 전날 밤 신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밤을 새웠다.

그리고 예수님의 얼굴을 밟고 돌아온 신자들은 주님을 배반했다는 생각에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 하였다고 한다.

그 눈물 속에서도 다음 후미에가 닥치면 또한 자신이 어찌하게 될지 ‘스스로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에 두렵고 절망스러웠을 것이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아니기를 바라는 제자들, 허나 확신할 수 없는 그 모습에서 종종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지금까지의 나와 앞으로 펼쳐질 나의 삶을 전부 알고계시는, 그리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시는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건네실까?

 

역사상 예수님만큼 극적인 배신을 당한 인물도 잘 없을 것이다.

가장 큰 사랑을 보여주었으나, 가장 큰 배신을 당하셨다.

유다는 돈을 받고 당신을 팔아넘기고, 으뜸 제자는 세 번 부인을 하고, 그 밖의 모든 제자도 흩어져 도망쳤다.

살아생전 본 제자의 마지막 모습은 도망치고 배반한 모습이었다. 요한 한명만 십자가 밑에 있었다.

가장 힘이 들 때, 늘 함께하던 친구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라는 인물을 치욕적인 배신을 당한 순진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장 큰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장 큰 아픔도 이겨내실 수 있었다.

요한 복음서는 제자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이렇게 전한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13,1)”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주님께서는, 배신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을 끝까지 더 사랑해 주셨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끝까지 더 사랑해 주심’이 흔들리고 아파하는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한결같은 대답이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는 신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후미에를 종용받는 선교사의 갈등이 적혀있다.

신부는 자신이 배교하지 않으면 고문당하는 신자들이 처형될 상황에 놓이게 되어 고뇌하게 된다.

결국 신부는 후미에를 밟게 되는데, 동판에 발을 가져다 대자 통증과 함께 그림으로 그려진 예수가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밟아라. 밟아라.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십자가를 졌다. 그러니 밟아라."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십자가의 길 12처 기도문 중.

“구세주 예수님, 혹시라도 영원히 주님을 떠날 불행이 저희에게 닥칠양이면 차라리 지금 주님과 함께 죽는 행복을 내려주소서.”

끝까지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기도이며 결심이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근심하며 묻고 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흔들리고 아파하고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예수께서는 침묵하신다.

주님의 이 침묵이 사랑으로 충만한 무엇이었음을 언젠가 깨달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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