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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금)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
갈밭성당 현장에 들락날락 하면서 평소에 잘 들어보지 못한 건축용어들도 주워듣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조적, 조적 쌓기, 조적벽 뭐 이런 말이 있다.
돌이나 벽돌 따위를 쌓아 올리는 작업을 뜻한다.
세상에 재밌는 구경거리가 몇 가지 있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서 불구경, 싸움구경 뭐 그런 이야기 들어 보셨을 것이다.
근데 내 집 벽돌이 쌓여 올라가는 것. 이것 보는 것 또한 쏠쏠한 재미다.
하룻밤 자고 나서 가 보면 사람 키만큼 성큼 성큼 올라가 있다.
둥글게 마감된 부분을 처리하는 것들도 보면 참 재밌다.
네모난 벽돌이 모여서 둥글게 라운드 처리가 되어가는 것이다.
조적 작업에 앞서서 기준을 잡는 것의 중요함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벽돌을 쌓아가는 과정 중에도 계속해서 기준에 부합하게 쌓이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놓는 것이 실을 띠워서 수직을 긋고, 또 줄이나 레이져로 수평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기준 되는 실을 잘 띠우고, 그 줄이 정확하게 수평 수직이 되는지 확인을 하고, 그 기준에 맞게 벽돌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 시대에 조적작업은 어떠했을까?
줄을 띠우거나 레이져를 쏘아서 기준을 잡은 것은 아니고, 건축의 표준이 되는 돌을 모퉁이에 놓는 것으로 기준을 세웠다고 한다.
이 돌의 이름이 무엇일까? ‘머릿돌’이다.
곧 머릿돌을 한쪽 모퉁이에 놓고 그 돌을 표준으로 하여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위로나 똑바로 벽돌들을 쌓아 건축을 했다.
해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조금이라도 삐뚤게 놓여 지면, 그 건물은 균형을 잃게 되거나 아예 건축을 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예수님과 늘 적대관계에 있었던 부류들 즉, 바리사이, 율법학자 들은 자신들이 기준이 되고자 했다.
자신들의 믿음과 판단으로 백성들 삶과 신앙의 집에 줄을 띠우고 레이져를 쏘아 기준을 잡으려고 한 것이다.
너는 튀어나왔고, 너는 삐뚜루 하고, 너는 뒤집혀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은 결국 기득권의 유지, 이기심의 충족, 하느님을 소유하겠다는 욕망의 표현이었다.
이것을 간파한 예수께서는 ‘눈먼 인도자’, ‘회칠한 무덤’이라고 강한 비판을 가하자 이들은 모의를 꾸미게 된다.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이러한 모의는 개인의 삶에서, 공동체에서 늘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이 유혹에 대해서 우리는 강하지 못하다.
우리네 삶에서 진정한 기준, 방향을 제시하는 줄, 머릿돌은 과연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좌우, 위아래, 나와 우리의 생활을 쌓아 올리고자 노력하였는가?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요한2,16)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2,19)
예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희생과 부활을 통해서, 다시금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자 하신다.
우리 각자가 예수님을 기초로 둔 재밌고 아름다운 집이 되길 노력해 보자.